바늘이 턴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내려앉고, LP판의 잔잔한 노이즈와 함께 피아노 전주가 조용히 흘러나올 때, 마음속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조용히 깨어납니다.
오늘은 나카모리 아키나의 4집 정규 앨범 『NEW AKINA エトランゼ』(1983) 중, **「わくらば色の風」**를 중심으로, 가슴 깊은 곳의 그리움과 아련함을 꺼내보려 합니다.
가을빛 바람이 전해주는 섬세한 감정의 결
「 わくらば色の風 」는 직역하면 ‘시든 잎의 색을 닮은 바람’입니다.
제목부터 이미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듯, 곡 전체에 가을 저녁의 색감이 담겨 있는 이 곡은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이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더욱 고요하고 성숙한 감성을 전달합니다.
아키나의 목소리는 이 곡에서 한층 더 섬세해지고, 마치 귓가에 속삭이듯 낮고 조용한 톤으로 감정을 밀도 있게 전합니다. 단조로운 멜로디 속에서도 그녀의 음색은 시간의 결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고, 들을수록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줍니다.
한 시절의 끝에서, 바람처럼 스쳐간 사람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유난히 잔잔했던 어느 가을날이 떠오릅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흩날리던 그 시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한 사람과 조용히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기억. 그 순간의 따뜻함과 동시에, 끝을 예감하던 묘한 슬픔이 교차했던 날들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어떤 바람을 맞고 있을까’—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곡입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이 곡에서 어떤 극적인 기교도 없이, 그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전합니다.
마치 오래전 첫사랑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처럼, 들을수록 기억의 파편들이 가슴속을 천천히 채워갑니다.
LP라는 매체가 주는 아날로그의 감성
특히 이 곡은 LP로 들었을 때 그 매력이 배가됩니다.
아날로그 음원 특유의 따뜻함, 바늘이 옮겨가며 만드는 작은 잡음, 그리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키나의 목소리는 디지털 음원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되감는 듯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LP에 담긴 「 わくらば色の風 」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하나의 감정적인 ‘풍경’이 됩니다.
마치 늦가을 오후,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순간처럼요.
당신의 마음에도 바람이 스쳐가기를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마다 품고 있는 기억 하나쯤 떠오르지 않을까요?
오래전 헤어진 친구, 말없이 멀어진 사람, 혹은 아직도 용기 내지 못했던 인사. 저 역시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땐, 오래전 사귄 여자친구와 함께 걷던 가을 산책길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풍경이, 지금은 참 그립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늘 낙엽을 밟는 소리를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저는 가을이면 이어폰을 끼고 이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낙엽 위를 걷게 되더군요.
나카모리 아키나의 「 わくらば色の風 」는, 계절이 바뀌는 틈 사이에서 가슴 한켠의 공허함을 달래주는 곡입니다.
빠르게 흐르는 일상 속에서 문득 멈춰서게 만들고, 묻어두었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보게 하죠.
오늘 하루쯤은 그런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이 이 곡을 통해 혼자만 알고 있었던 아련한 기억, 이름도 없이 지나간 누군가의 흔적을 조용히 떠올려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상냥한 봄이지만 바람이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기억이 다시 마음에 머물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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